[研究者声明]日本軍「慰安婦」運動の終わりではなく未来を想像する
去る5月から韓国のメディアが中心となり、日本軍「慰安婦」運動と歴史への歪曲と疑惑、非難をまき散らしています。日本軍「慰安婦」運動に対する非難や疑惑ではなく、運動についての知や批判的検討、そして、研究者としての自らの責任を省察することで、日本軍「慰安婦」運動と共にしようという趣旨で声明文を発表しようと考えています。
声明は、正義連に伝達し、水曜集会での連帯発言として紹介しようと考えています。声明に同意してくださる研究者の方々は、お名前を連ねていただきますようお願いいたします。
(正義記憶連帯)
*下のフォームでお伺いしている情報は「お名前(ペンネーム可)または団体名(必須)」「研究分野(個人連名の場合)」「メッセージをお願いします」の3つです。
(注:お名前などをいれるフォームは下記アドレスから入って下さい。韓国語、英語、日本語と続いた後にフォームがあります)。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xGA7CwVAekYPJJHFzVnvsHB7OjbO7YAwCuMIJ32tzzVXXbA/viewform
[研究者声明]日本軍「慰安婦」運動の終わりではなく未来を想像する
日本軍「慰安婦」運動が歩んできた30年、これは日本軍「慰安婦」問題が解決されてこなかった時間である。
1991年8月14日、日本軍「慰安婦」サバイバーである金学順は日本軍「慰安婦」被害経験を初めて公式証言した。金学順の証言はまた別の被害サバイバーの登場を促し、日本軍「慰安婦」の経験が公的な場で発話された。以後、日本軍「慰安婦」運動は、被害サバイバーの証言、市民が集まり歴史と問題意識を共有する水曜集会、世界の戦時性暴力被害女性と子どもたちを支援するナビ基金など、多様な運動を通じて帝国主義、植民地主義、民族主義、家父長制など多層な抑圧を明らかにし、日本軍「慰安婦」問題を被害当事者だけの問題ではなく、皆の問題へと拡げてきた。
このような運動の始まりと道のりには、研究者たちが常に共にしてきた。李効再と尹貞玉をはじめとする研究者たちは、被害サバイバーの言葉を理論に、個人の経験を集合的記憶・経験に、個人の「不運」を社会構造の問題として把握し直した。この過程で被害サバイバーは人権活動家として、研究者と活動家は責任を受け継いでいく知識人と社会運動家へとかわっていった。それぞれの役割を果たしていく中で、活動家と研究者、運動と研究の境界を超えることもあり、また別の人にこの道のりを共にすることを促し、日本軍「慰安婦」問題の解決の歴史を作ってきた。
しかし、メディアが中心となり、日本軍「慰安婦」運動の歴史に「一部」の被害サバイバーと活動家だけが存在しているかのように、また、日本軍「慰安婦」運動が被害サバイバーを政治的・経済的に利用してきた運動であるかのように描き、被害サバイバーと活動家に激しい疑惑と非難が向けられる状況を、今、私たちは目撃している。この流れは、30年間に拡げられてきた運動の意味と連帯、日本軍「慰安婦」問題を否定してきた日本政府と問題解決に消極的な態度をとってきた韓国政府、そして、私たち皆の責任を消し去ろうとしている。
このような状況は、いまだに日本軍「慰安婦」問題と運動が韓国社会に十分に共鳴して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を見せつける。一方で、同じように30年の間に強固に積み上げられてきた日本軍「慰安婦」問題への無視や無関心、無知の姿勢を背景としている。日本軍「慰安婦」問題は、歴史の教科書の片隅に「過去」の事件として要約されて記載されており、多様な分野の研究者たちが日本軍「慰安婦」問題と運動について研究してきたのにもかかわらずまるで一部の研究者たちが関心を寄せている特異な主題であるかのように捉えられていた。
今、私たちは、関心の向きをかえ、社会が日本軍「慰安婦」運動が絶えず発信してきたメッセージを誠実に受け取り、応答してきたのかを問いたい。長い運動にもかかわらず、被害サバイバーの苦痛が解消されていない状況と日本軍「慰安婦」問題が解決されていない条件とは何なのか、韓国政府と日本政府の責任とは正確には何なのか、私たち皆に残された課題とは何なのかを、問いたい。
日本軍「慰安婦」問題の正しい解決は、過去の特定の時期に起こった問題の解決ということだけではない。韓国だけでなく世界各地で起こっている戦時性暴力、過去だけではなく現在も多様な方式で繰り返されるミソジニー、このもつれた様々な不正義に直面し、解決し、繰り返さないという約束を伴うべきである。
不正義の苦痛を理解し、共感し、日本軍「慰安婦」問題の根本的な原因を把握し、この責任を受け継ぐ大衆を公的な場へと引き出す知を創り出すことが研究者の責務であるので、私たちは日本軍「慰安婦」運動が直面している現在を、運動の終わりとしてではなく、日本軍「慰安婦」問題を解決しろというメッセージとして読み解きたい。単純に疑惑と非難に注目するのではなく、30年間の複雑な道のりを深く見つめ、再び日本軍「慰安婦」運動の責任を一部の活動家や研究者に押し付け、これを外から判断するのではなく、私たち皆の位置と責任について考えたい。
私たちは、日本軍「慰安婦」運動の終わりではなく未来を想像する。
〈英語版〉
Since May, countless rumors and accusations have been made against the movement regarding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issues. The following statement conveys the idea that we stand with the movement to redress these issues by reflecting on our responsibilities as researchers, and through knowledge and critical examination of the movement, as opposed to relying on baseless reproach and rumors. The statement will be sent to the Korean Council for Justice and Remembrance for the Issues of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and shared at the Wednesday Demonstrations in the form of a solidarity speech. Please sign this statement as a researcher in support of the movement.
[Researchers’ statement] Imagining not the end of the movement, but its future, to redress the issue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Three decades is not only how long the movement has been going on, but also the number of years society has failed to resolve the issues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On August 14 of 1991, a survivor of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system Kim Hak-Soon officially testified about the victimization she had experienced for the first time. Her testimony brought other survivors together in public forums to tell their own stories of sexual slavery. Since then, the movement has expanded the realm of the issue to something that speaks to the whole world, rather than a regional one merely revolving around the system’s direct victims. Such an expansion was made possible through multiple forms of engagement, such as testimonies from the survivors, the Wednesday Demonstrations, and the Butterfly Fund, which revealed multiple layers of oppression, including imperialism, colonialism, nationalism, and patriarchy.
Researchers have been standing with the movement from its emergence. Lee Hyo-Jae, Yun Chung-Ok, and other researchers reinterpreted survivors’ language into theories, individuals’ experiences into a collective memory and experience, and personal “misfortunes” into a matter of social structures. Through this process, survivors transformed into human rights activists, while researchers and activists were becoming intellectuals and social activists. Overcoming boundaries between activists and researchers as well as the movement and academia were crucial aspects in the movement’s history, which revolved around reaching out to those who seek to participate in the cause.
Today, however, we are witnessing a reality in which the movement aiming to redress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is being heavily censured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described as if it has been for “just a few” survivors and that activists have exploited survivors’ voices for political and economic reasons. What is being erased in this discourse are the implications and solidarity surrounding the movement, the Japanese government denying the issue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the Korean government keeping a passive attitude in resolving the issue, and the responsibility we all hold.
The current situation reveals that the issues and the movement related to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have not yet fully resonated throughout Korean society. Three decades of ostracism of, indifference to, and ignorance on the issues create the backdrop of this reality. Despite the fact that the issues of and the movement regarding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are being studied by scholars in numerous disciplines, the topic is not only just briefly summarized as something from “the past” in Korean history textbooks but also considered an unusual research interest held by only a few academics.
It is now time for us to ask ourselves, whether the messages that have been consistently transmitted by the movement over the last three decades have been properly received and responded to in our society. The inquiry involves critical questions on the conditions under which neither survivors’ pain nor the issues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have been redressed despite the tireless movement, the specific responsibilities that the Korean and the Japanese governments hold, and the tasks that we have left in our hands.
The just resolution of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issues does not cease at addressing just some particular actions at some particular time. The resolution requires confronting, redressing, and preventing sexual violence in armed conflicts, misogyny in its countless forms, and the related manifestations of diverse injustices that continue to take place around the globe. For it is researchers’ responsibility to analyze the root causes of the issues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and to produce knowledge that can create an arena in which public responsibilities are inherited, we interpret the present moment as a message pressing for a redress of the issue through a transformation of the movement, rather than ending it. We would like to trace the complicated journey over the last three decades rather than merely focusing on conveniently crafted suspicions and accusations, and deliberate on where we all stand and what we must do, rather than leaving all of the responsibilities for the movement to a small number of activists and researchers.
Hence, we hope to imagine not the end of the movement, but its future, to redress the issue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韓国語版〉
[연구자 성명]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끝이 아닌, 미래를 상상한다
지난 5월 이후, 언론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운동과 역사를 향한 왜곡과 의혹,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대한 비난과 의혹이 아닌, 운동에 대한 앎과 비판적 검토, 연구자로서의 책임에 대한 성찰에 기반하여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함께 하겠다는 취지를 담은 성명서입니다.
성명서는 정의연에 전달하고 수요시위에서 연대 발언을 통해 공유할 예정입니다. 성명서에 뜻을 함께 해주실 연구자분들께서는 연서명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연구자 성명]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끝이 아닌, 미래를 상상한다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지나온 30년, 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시간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김학순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경험에 대해 최초로 공식 증언했다. 김학순의 증언은 또 다른 피해 생존자의 등장을 이끌었고 이를 통해 일본군‘위안부’의 경험이 공적인 장에서 발화되었다. 이후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피해 생존자의 증언, 시민이 모여 역사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수요시위, 세계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 등 다양한 운동을 통해 제국주의, 식민주의, 민족주의, 가부장제 등 다층적인 억압을 드러내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피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로 확장해왔다.
이러한 운동의 시작과 여정에는 연구자들이 늘 함께 있었다. 이효재와 윤정옥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피해 생존자의 언어를 이론으로, 개인의 경험을 집합적 기억과 경험으로, 개인의 ‘불운’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전환하고 재구성해왔다. 이 과정에서 피해 생존자는 인권 활동가로, 연구자와 활동가는 책임을 계승해야 할 지식인과 사회운동가로 변화해왔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때로 활동가와 연구자, 운동과 연구의 경계를 허물고 다른 이에게 이 여정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역사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언론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운동 역사에 ‘일부’ 피해 생존자와 활동가만 존재해왔던 것처럼, 피해 생존자를 정치적·경제적으로 이용해온 운동인 것처럼 그리며 피해 생존자와 활동가를 향한 의혹과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30년 동안 확장되어왔던 운동의 의미와 연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부인해온 일본 정부와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온 한국 정부, 우리 모두의 책임은 삭제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공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다른 한편에서 마찬가지로 30년간 견고하게 쌓인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면, 무관심, 무지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역사 교과서의 제한된 지면에 ‘과거’의 사건으로 요약되어 있고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운동을 연구해 왔지만, 일부 연구자들의 예외적인 관심사로 여겨져 왔다.
이제 우리는 화살을 돌려 우리 사회가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끊임없이 발신했던 메시지를 성실하게 수신하고 응답해왔는가를 질문하고자 한다. 오랜 운동에도 불구하고 피해 생존자의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과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조건은 무엇인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정확한 책임은 무엇인지, 우리 모두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질문하고자 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은 과거, 특정 시기에 발생했던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시 성폭력,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다양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여성 혐오, 이와 얽힌 다양한 부정의를 직면하고 해결하고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수반해야 한다.
부정의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계승할 대중을 공적인 장으로 끌어들이는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연구자의 책무이기에,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현재를 운동의 끝이 아닌 전환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로 읽어내고자 한다. 간편한 의혹과 비난에 주목하는 대신, 30년간의 복잡한 여정을 깊게 살펴보고, 또다시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책임을 일부 활동가와 연구자에게 맡겨두고 이들을 평가하는 대신, 우리 모두의 위치와 책임을 고민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끝이 아닌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