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安婦」問題にとりくむ福岡ネットワーク と 戦後責任を問う・関釜裁判を支援する会有志 が「ナヌムの家」 の実務者たちの告発を支持する声明を出しています。
いろいろな攻撃や分断の中で被害女性のハルモニたちに一番近いところで努力しているナヌムの家のスタッフのみなさんに、支持しているとの声は大きな励ましになると思います。
皆さんの励まし・支持の声も届けて下さい。    



       ナヌムの家7名の実務者の告発を支持します! 
       ナヌムの家は被害者ハルモニたちのための施設です! 


 ナヌムの家は、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向き合いたいと願う日本人にとっても特別な意味を持つ場所です。被害者の体温を感じながら、日本の慰安所政策、日本軍による性暴力の実態を知り、被害者が生き抜いてくださったことに感謝しつつ、亡くなられたハルモニたちを追悼する場です。


 私たちはこの度のナヌムの家7名の実務者による内部告発に驚き、その勇気に感動しました。 運営母体曹渓宗がハルモニたちへの膨大な寄付金をハルモニたち亡き後の福祉ビジネスに回し、ハルモニたちに対して直接使われた金額は寄付金全体の5%にも満たない額だったと知りました。


 関釜裁判の原告であった朴頭理ハルモニは、93年にナヌムの家に入居し、2006年に亡くなられましたが、亡くなる前の2年間を思い出します。朴頭理ハルモニの当時の状態は24時間の介護が必要で、ナヌムの家にはその人的余裕がなく、付き添い人を雇わないといけないが、費用は自費で支払ってもらわねばならないとのことで、金銭的に余裕のないハルモニはナヌムの家で生活できず老人専門病院に入ったと聞きました。


 しかし、入院の数日後に病院のミスで足に大きな火傷(ホットカイロによる低温火傷)を負われました。安養メトロ病院に移って手術を受けられ、回復しましたが、一人で歩けなかったのでその事故を起こした老人専門病院に戻られました。そして数日後に再び同じ原因の火傷をして安養メトロ病院に移り2回目の手術を受けられました。奇跡的に回復したハルモニはまた同じ老人病院に戻されました。さらにそこでベッドから落ちて大腿骨を骨折して再再度安養メトロ病院に移り手術を受けられ、一時回復されましたが、その病院で最後をむかえられました。


 何故、ナヌムの家で介護体制を作れないのか、何故、3度もこの劣悪な老人専門病院に入院させられるのか理解できませんでした。しかし、この度の告発で運営母体曹渓宗の方針が根本原因だったことを知りました。そして、実務スタッフの方々がそのような厳しい労働環境の中で、自費でハルモニたちに必要なものを購入するなど骨身を削って長年ハルモニたちのお世話をしていただいていたことがわかりました。私たちは彼らに深く感謝します。


 ナヌムの家運営関係諸氏は実務者たちの声を真剣に聞き、ハルモニたちに贈られた寄付金はハルモニたちのために使ってください。日本軍「慰安婦」問題に関心がないのなら、曹渓宗はナヌムの家の運営から手を引いてください。


 私たちは生存するハルモニたちが幸福で穏やかな生を全うされることを切に望んでいます。

                                                                         2020年6月20日
                        「慰安婦」問題にとりくむ福岡ネットワーク
                           戦後責任を問う・関釜裁判を支援する会有志


〈韓国語〉
                                                                                                                           
     ‘나눔의집’의 7 명의 실무자들의 고발을 지지합니다!
     ‘나눔의집’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입니다!

나눔의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자 하는 일본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입니다. 피해자의 체온을 느끼면서 일본의 위안소 정책,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의 실태를 알고, 피해자가 꿋꿋하게 살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장소입니다.

저희들은 이번 나눔의 집의 7명의 실무자들의 내부 고발에 놀랐고, 동시에 그 용기에 감동받았습니다. 운영 모체(母体)인 조계종이 할머니들을 위해 모아진 막대한 기부금을, 할머니들의 사후에는 새로운 복지 비지니스에 사용하려고 하였고, 이 때문에 할머니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사용된 금액은 전체 기부금의 5%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부재판의 원고였던, 박 두리 할머니는 1993년에 나눔의집에 입주하여 2006년에 돌아가셨습니다만, 돌아가시기 전의 2년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박 두리 할머니의 당시의 상태는 24시간 간호가 필요하였고, 당시 나눔의집에는 그 인적여유가 없어 새로운 간병인을 고용해야 했지만, 나눔의집에서는 그러한 비용은 자비(自費)로 지불해야 한다고 하여,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할머니는 나눔의집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노인전문병원에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입원 며칠 후 병원의 실수로 다리에 큰 화상 (핫팩에 의한 저온 화상)을 입게 되어 안양 메트로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했지만, 혼자서 걸으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사고를 낸 노인전문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같은 원인의 화상을 입어 안양 메트로병원으로 옮겨 두 번째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기적적으로 회복한 할머니는 이번에도 또다시 같은 노인전문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그 곳에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대퇴골 골절을 입으시고 다시, 또다시 안양 메트로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아, 일시적으로 회복되셨지만 결국 그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셨습니다.

왜 나눔의집에서는 간호 체제를 만들 수 없었는가, 왜 3번이나 그 열악한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고발로 운영 모체인 조계종의 방침에 그 근본 원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무 직원분들이 그러한 어려운 노동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자비로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오랜 시간 할머니들의 돌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실무자 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눔의집의 운영에 관계되신 모든 분들은 이러한 실무자분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으셔서, 할머니들을 위해 모아진 기부금은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해주십시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조계종은 나눔의집 운영에서 손을 떼 주십시오.

저희들은 살아 계신 할머니들이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020 년 6 월 20 일

                                   '위안부'문제에 주력하고 있는 후쿠오카 네트워크
                      전후(戦後) 책임을 묻는 ·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有志)